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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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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9 10:58:34, 조회 : 1,115, 추천 : 207 |

모든 이가 함께 누리는 평화
임영섭 목사 (한복협 중앙위원, 경동교회 담임)
마태복음서 18:10~14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운명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를 여러 가지 이미지와 상징과 이야기로 표현하는데, 그중에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을 담고 있는 단어가 ‘샬롬’입니다.
우리는 ‘샬롬’을 ‘평화’라는 뜻의 단어로만 알고 있지만 ‘샬롬’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한 것이 ‘샬롬’입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풍요로운 것도 ‘샬롬’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도 이 말을 씁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만드는 원만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전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도 ‘샬롬’입니다.
복음서에는 이러한 ‘샬롬’이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읽은 양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으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남겨 두고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가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으면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작은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사실 이 비유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하는 건 맞는데,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떠나는 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자칫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남아 있는 양들까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이런 비유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일까요? 그것은 ‘샬롬’이 가진 대표적인 의미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샬롬’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사실 이 단어에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전함’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샬롬’은 ‘온전함’이라는 뜻 때문에 전체에서 한 마리라도 빠져 있으면 ‘샬롬’이 될 수 없습니다. 한 마리라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모든 이가 함께해야 그것이 ‘샬롬’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가 당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 읽은 양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큰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한 마리쯤은 무시하거나 포기해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예수가 살던 로마제국은 소수의 권력자가 누리는 행복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하던 사회였습니다. 한 마리 양을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가 착취당하고 고통당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던 사람들에게 예수의 비유는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가르침이었을 겁니다.
106년 전 일어났던 삼일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이 우리나라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적 의의가 큰 것은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무기 대신 태극기를 들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을 외친 무력 충돌 없는 평화적인 시위였습니다. 특히 종교를 넘어 기독교, 불교, 천도교 지도자가 하나되어 도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강조하였고, 학생, 여성, 농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였습니다. 일본 경찰이 무력으로 탄압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저항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삼일운동은 종교, 계급, 성별, 지역을 넘어 하나된 저항이었고 심지어 일본 경찰에게조차 해를 가하지 않는 ‘샬롬’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사에 남을 만한 훌륭한 평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삼일운동은 나중에 민주화 운동을 비롯하여 국내외 평화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계엄 이후의 우리 사회는 그 어디에서도 ‘샬롬’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는커녕 사회 전체가 사분오열로 갈라져 있습니다. 서부지법 폭동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이 난무하고 거짓과 선동이 판을 칩니다. 일제에 항거한 삼일운동도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는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갈등과 분열 한가운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위해 헌신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편을 갈라 폭력과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공동체 전체가 벌을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의인이 사회 전체를 구원하는 일도 있습니다. 어떤 한 개인도 경시될 수 없고 공동체 전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 마리 양이 없이는 온전한 ‘샬롬’을 이룰 수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106년 전 과거의 삼일운동은 현재 갈등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샬롬’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시는 사순절입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고난의 길을 가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 ‘샬롬’을 회복하기 위해 힘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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