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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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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16:06:23, 조회 : 8,083, 추천 : 2927 |

건전한 목회 건강한 교회
이정익 목사 / 신촌성결교회
한국교회는 이제 120년의 역사라는 연륜을 지니게 되었다. 전국민의 25%나 되는 기독교 인구도 보유하게 되었다. 한 종파가 15%의 인구를 확보하게 되면 그 사회와 정부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집단으로 형성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부내 요직 곳곳에 자리잡고 중요 정책입안 처리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성숙한 교세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점은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민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7-80년대의 대부흥
한국교회는 120년 역사가운데서 가장 화려하게 발전하고 성장한 시기를 꼽는다면 1970-80년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력이 그 시기에 매년 10%를 상회하는 경제발전과 팽창을 하는 성장에 힘입으면서 기독교세도 맞물려 양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맞이 했었다. 무려 증가하는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고 양육할 여유도 없이 교회는 양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하였고 대형교회 건축이 붐을 일으켜 그 성장과정에서 한국교회는 숫적으로나 공간확보 면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교세확장에 놀라운 부흥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교회는 이 시점이 교회사적으로 볼 때 가장 화려하게 교회가 성장한 전성기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초대형교회들이 출현하였고 한국은 교회부흥의 중심지로 전 세계인들에게 경외스럽게 이목이 집중되는 나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가까이는 일본 중국 아시아국가 기독교들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부흥하였고 미국이나 구라파의 기독교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성장을 연구대상으로 여겨 한국교회를 보기 위해서 방문자들이 쇄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결국 이같은 한국교회의 발전과 양적 성장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전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내 보내는 나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의 풍부한 자본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들수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자본은 교회의 급성장으로 한국은 단기간내에 세계적인 대표적 초대형교회들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수만명이 모이는 교회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뜨이게 되었고 이같은 신생 대형교회들은 지금 이 시점에도 전국 단위로 어렵지 않게 출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한국사회는 아주 좋은 종교적 풍토를 가진 나라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재정자본의 풍부함은 한국 교회의 또 다른 장점에 속한다. 재정이 풍부하다 보니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역할의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기독교들이 한국교회에 대해서 시샘하는 이유도 이 풍부한 재정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선교적 자본도 얼마나 풍부한가.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만명 넘게 전세계에 파송할 수 있었고 각종 선교단체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재정자본의 강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넘치는 목회지망생이며 줄을 잇는 선교사 지망생의 출현은 한국교회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세계적 선교사명을 지원하고 떠받치게 되는 후원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게 한다. 이런 점들은 한국교회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고 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기독교적 자본은 전도하기 좋은 신앙적 환경을 지닌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종교적 풍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심성과 종교성은 뛰어나며 순수하며 열정적이며 전도와 회심이 빠르고 쉽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한국교회의 성장 기조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이 잘만 한다면 이 좋은 신앙적 풍토와 자본을 가지고 상당기간 기독교 시대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문제점
한국교회는 이같은 좋은 환경과 신앙적 풍토를 유산으로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좋은 장점들을 효과있게 오래 발휘하지 못하고 목회자들의 비윤리적 목회로 하여금 교회가 사회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목회현장을 목회자들 스스로 오염시키고 부정적 모습으로 흐려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의 여지를 남겨놓고도 조로현상에 시달리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공감성을 잃고 말았다. 한국교회로 하여금 공감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요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교회의 크기 경쟁이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더 크게 건물을 짓기 위하여 새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교회를 짓는 일에 골몰해 왔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교회로 만들려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인간적 집념과 경쟁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하구많은 부실함과 부정적 시각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작은 개척교회 문앞에 까지 버스를 대기시켜 신자들을 거두어 가는 대형교회들의 비정함과 한 건물안에 몇 개씩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들의 비윤리적 행태들, 케이블을 깔아 지점교회의 개설을 서슴치 않았고 남의 교회앞에 지성전을 세워 문어발기업을 연상케 하는 이같은 행태들은 결국 한국교회로 하여금 신앙풍토를 오염시키고 건전하지 못한 목회질서를 유발하여 장기간 발전해가고 성숙해가야 할 한국교회로 하여금 그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고 내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타교회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뺏어가는 전도행태들, 이웃교회 신자들이 등록하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목회윤리의 타락, 대형교회로 몰려가는 풍토가 낳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 가난한 교회 목회자들의 자탄과 위축 그리고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스타의식, 세몰이식 무분별한 총동원주일 행사 등 이같은 한국교회의 뜻을 잃은 목회질서가 만들어낸 결과는 오늘 한국교회가 더 이상 사회에 공감을 줄 수 없는 생명력을 잃은 기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 성공지향주의가 낳은 산물이고 대형교회로 나아가려는 인간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라 하겠다.
한국교회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교회의 본연의 자세를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하루 빨리 목회자의 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직종에 종사하든 그 직종에는 기본이 있고 길이 있게 마련이다. 그 기본과 길을 무시하면 그 공동체는 깨지게 마련이다. 그 질서의 깨짐은 곧 그 공동의 삶이 희생당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희생이 후에 자신에게도 미치게 된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로 이 개인주의적 교회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전체에게 부정적으로 미치고 있다는 점이며 그 부정적 영향은 곧 머지않아 자신에게도 미치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늦지않게 일어버린 길을 찾고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원칙은 목회신학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신학은 뼈대이며 길이며 가이드 라인인 동시에 잣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목회의 길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목회신학으로 판정을 받아 길을 찾고 회복해야 한다. 목회신학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교회와 목회가 바로잡혀야 한다. 그 점을 신학자들은 입을 열어 감시해야 하고 고발해야 하고 지적해야 한다. 신학자들도 큰교회에서 불러주면 황송해서 칭찬일변도의 설교로 칭송하고 사례비 많이 주면 입 다물고 있고 신학생들에게 교회성장사례로 소개하는 한은 한국교회의 잘못된 이 풍토는 바로잡혀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감시의 소리가 약화되고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사시에 오늘에 와서는 양식있는 목회자들 조차도 서슴없이 지성전을 세우고 케이블 통한 동영상 예배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교회는 모두 하나같이 공동운명체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현재 내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고 해서 안일하게 편법을 일삼아도 된다는 식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견지하는 한 머지않아 한국교회는 이 사회로부터 함께 지탄받고 돌팔매질을 당하다가 마침내 도태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오늘은 회심전도가 되지 않아 내 교회로 몰려오는 신자들은 대부분 어느 교회에서 옮겨오는 수평이동 신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내 교회의 부흥은 생각해 보면 어느 교회의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여 공동의 운명적 심정을 지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침체는 내 교회와는 상관없다는 안일한 인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이제 어전의식을 가지고 목회에 임해야 한다. 모두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크기 경쟁을 벌이고 사람만 보면서 목회하다 보면 어느날 씻지 못할 중대한 과오를 져지르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목회를 하여야 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어전의식을 잊어서는 안된다. 목회자들에게는 더 혹심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않된다. 이 어전의식이 없으면 목회자들이 소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고 군림하려는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며 전체 교회적 풍토를 외면한채 독자행동을 남발할 수 있게 된다. 그 독자행동이 전체 한국기독교로 하여금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심각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 행동이 마침내 목회일선에서 은퇴하였으면서도 교회를 떠날줄 모르고 교회에 대한 미련때문에 후임자에게 내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아까워 매사 불화를 조장하는 우를 남기게 된다. 모두 하나님 목회를 한 것이 아니고 내 목회를 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지금까지 이같은 목회행태들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중병에 걸리게 만들었고 우리 사회로부터 교회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병들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결 론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는 하등 문제점이 없다. 교파를 나누고 찢고 흩어놓고 신학교를 남발하고 교회마다 신학교를 만들어 모두 학장이 되고 교수가 되는 이 일에 일반 신자들이 나서서 주도하고 운영해 온 경우는 거의 전무할 것이다. 신자들은 아직도 튼튼한 새 교회를 헐고 다시 짓자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총회장 선거에 수억씩 봉투를 뿌리는 이같은 풍토에 신자들이 내막 깊숙히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기막힌 선거풍토의 속사정을 신자들이 깊이 안다면 기절할 노릇이다. 교회의 헌금을 가지고 선거에 투입하는 이 추한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알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따라주고 믿어주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들어주는 교인들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참으로 좋은 풍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같은 세계에도 없는 좋은 풍토를 한국교회는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본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고 또한 한국교회가 얼마든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오히려 좋지못한 인식을 심어 우리사회로 하여금 교회무용론을 확산시킨 것은 불신사회가 아니고 우리 교회이며 또한 우리 목회자들의 무분별한 행동에서 비롯되었음을 뼈아프게 인식하여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때를 놓치지 말고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한국교회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길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내 목회를 지양하고 하나님 목회를 해야 한다. 내 교회만의 부흥을 고집하지 말고 전체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 사회와 지역사회가 교회로 하여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세상을 향해서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교회가 그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때 교회는 비로서 건강해질 것이고 목회는 건전해질 것이고 교회에 대한 이반된 사회인식은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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