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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엔데믹 시대, 한국교회의 총회들에 바란다 - 조성돈 교수
한복협  2023-09-27 12:58:36, 조회 : 92, 추천 : 36

                                          새로운 세계로 간다




조 성 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연구소장)


2023년은 코로나 이후 만 3년을 가득 채우고, 이제 4년째를 맞는 때이다. 지난 3년은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매년 마케팅 기반으로 1년을 전망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2021년을 맞이하는 책에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는 이야기를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즉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패러다임인 ‘방향’의 문제는 의미가 없어졌고, 이제는 ‘속도’를 좇아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2022년을 맞이하는 책에서는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타임머신을 탔다고 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마치 타임머신처럼 코로나는 우리로 하여금 연속적인 시간이 아니라 불연속의 시간을 경험하게 했다는 말이다. 즉 연속선 안에서 진행되는 시간의 속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단절된 것으로 보이는 사회발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 과거를 돌이켜 보면 3년 전 우리가 가졌던 화두는 의미가 없어졌다. 특히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4차산업혁명은 그 시작과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슈밥 교수가 4차산업혁명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 이야기는 생경했고, 다소 성급해 보였으며, 무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이 있고 나서 세계는 마치 그의 마술에 걸린 것처럼 바로 생활 주변에서 4차산업혁명을 경험했다. 특히 다보스 포럼 이후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우리로 4차산업혁명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때를 ‘슈밥의 매직’의 시기라고 이름했다. 마치 마술처럼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4차산업혁명의 결과들이 불현듯 바로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4차산업혁명의 매직은 불과 4년 만에 사라졌다. 코로나 상황에서 사회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를 겪게 되었다. 4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4차산업혁명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까에 대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을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해야 했다. 세계가 ‘셧다운 shutdown’된 상황에서 생존의 발버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전에 우리가 새로운 것 앞에서 했던 윤리적 고민이나 ‘부작용 side effect’에 대한 대처 등은 모두 사치가 되어버렸다. 당장 눈앞에서 무너지고 죽어가는 상황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변화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변화 앞에 어떤 고민이나 고려, 내지는 망설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일단 달려 나가는 롤러코스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우리는 이렇게 3년 동안 변화의 소용돌이를 살았고, 생존자가 되어 이 자리에 섰다.
이제 그 길었던 코로나 상황은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한 숨 돌릴 때가 되니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미루어 두었던, 아니 애써 외면했던 문제들과 대면하게 된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1등을 하여 살아남은 주인공처럼 손에 돈은 쥐었지만,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종식된다는 의미의 ‘Endemic (풍토병화 된다는 의미)’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행복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거기서 불안과 절망을 함께 느깐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를 3가지 키워드로 전망해 본다. 먼저는 ‘엔데믹 리스크’로 정했다. 우리 앞에 있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 대한 위기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체적 신앙인’이다.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채워가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셋째는 ‘뉴월드’이다. 온라인으로 열린 새로운 세계가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엔데믹 리스크 Endemic Risk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이제 우리가 마스크를 벗을 때가 됐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도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마주했던 뉴노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최근 한국의 IT 업계에서는 재택근무를 마무리하고 현장 근무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이미 자리 잡은 재택근무제나 주4일 근무제 등에 제동이 걸렸다. 반응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몸에 익은 방법을 버리고 다시 이전과 같은 노동강도를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같이 코로나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3년간 우리 몸에 익었던 방식을 버려야 하는지, 또는 연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다. 교회 역시 비슷한 고민들이 많다. 요즘 목사들이 만나면 가장 큰 화제가 주일에 하는 식사 문제이다. 전에는 당연히 주일이면 교회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소위 이야기하는 ‘교밥’은 교회의 전통이었다. 오후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이나 교회에 봉사하는 자들을 위한 식사이기도 하지만, 교밥은 교제의 중심이기도 하다. 가족이 함께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 드리고, 함께 식사하고 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 특히 주일에 모이는 대가족들은 교회마당에서 가족들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고,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 부분이 코로나로 인해서 중단됐다. 그리고 이제 3년 만에 식당을 여는 것에 대한 논쟁이 교회마다 있다. 실제로 한목협 조사에 따르면 점심식사 재개는 약 60% 정도 밖에 안 되었다. 다른 사역들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다. 어쩌면 늦은 것이 아니라 포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개 목회자들이나 장로들과 같은 남성 리더십들은 교회 식당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 리더십이 거부한다. 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어느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장로들과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겠다고 나섰다가, 여성들이 끝내 주방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고 들었다. 어느 교회는 외주를 주기도 하고, 식당과 할인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을 맺기도 하고, 어느 교회는 아예 식당을 포기하는 것도 보았다. 이와 같이 아주 익숙한 교회 생활은 이제 우리에게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리스크’다.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 정작 문제는 변화된 성도들의 신앙 태도이다. 목회가 이전과 같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한다.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섣불리 나서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다. 코로나 기간에 구축한 온라인 기반은 유지를 해야 하는지, 현장으로 오도록 해야 하는지, 아니 더 불안한 것은 괜히 현장 복귀를 종용하다가 다 떨어져 나갈까봐 그게 더 걱정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불안하다. 변화에 친숙한 태도가 아주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무섭다. 가속도가 붙어서 좇아갈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다 불안하다.
엔데믹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다. 리스크는 분명 위기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도 한다. 한국교회도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위기 가운데 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실제로 얼마 전 실시되었던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5년 전 조사와 비교해 볼 때 기독교인의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7년도의 조사에서는 기독교인이 15.0%였는데, 2022년 11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4.5%였다. 그런데 전체 비종교인구는 이 기간 67.7%에서 73.7%로 현저하게 늘어났다. 결국 대학생 중에 종교인구는 26.3%인데, 기독교인이 14.5%라고 한다면, 종교인구 중 기독교인이 절반 이상을 훌쩍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코로나 기간 다른 종교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에 기독교인은 그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것을 보면 코로나 상황이 기독교에 꼭 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종교에 비하면 아주 잘 선방을 했다.
이 조사 전까지 대학생에 대한 불안은 상당히 컸다. 대학생 기간이 4년인데 지난 3년 동안 캠퍼스 사역은 거의 셧다운 되어 있었다. 또한 젊은 층에서 코로나 기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자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기독학생들이 기독교인임을 부끄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자리를 굳건히 지킨 자들이 있었다. 이를 보면 확실히 위기가 기회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려워도, 적어도 관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목회의 모든 부분이 이렇게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모든 부분이 위기일지 모르지만, 또 그 가운데 기회도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엔데믹 리스트’에서 관리를 잘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주체적 신앙인 / 슬기로운 교인 (Smart Saints)

문화선교원에서 하는 행사에서 2022년을 전망하면서 내세운 키워드 중에 하나가 스마트 성도 (Smart Saints)였다. 스마트한 소비자, 즉 스마트 컨슈머에 대한 이야기에서 따왔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열린 가능성을 통해 소비가 지혜로워졌다. 그냥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가격 비교를 하고, 세계 여러 사이트를 서치하여 가장 좋고 싼 물건을 찾아낸다. 심지어 여행을 가면 비행기표 예약에서부터 숙소 예약까지 개인이 알아서 핸드폰 하나로 해결한다. 이게 현대 소비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 교인들 역시 이렇게 스마트해졌다. 교회가 코로나로 인해서 교인들의 신앙욕구를 채워주지 못하자, 이제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살길을 찾아 나섰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성경 읽어 주는 유튜브 채널의 신장을 볼 수 있다. 이런 채널의 특징은 아무런 해설이나 설명, 내지는 그에 따르는 설교 등이 첨가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경구절도 따라오지 않고 단 하나의 화면만 비춰줄 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듣는다. 심지어 ‘성경읽어주는 큰아들’이라는 채널의 시편 낭독은 조회수가 440만 회를 넘어섰다. 작년에도 이 채널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299만으로 300만이 아직 안 되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140만 회가 증가했다. 이외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고 있다. 기독교 콘텐츠도 많이 이용하고 있고, 각종 세미나에도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많이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영성을 위해서 스마트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고 나니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전에는 스마트한 성도들이 이런 길을 나섰는데, 이제는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 3년이 지나고 나니 신앙생활의 패턴이 변한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회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좇아가는 것만 해도 일주일이 정신없이 갔다. 주일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와 수요, 금요예배가 있고, 소그룹 모임과 성경공부까지 하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졌다. 많은 부분 회복했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제 교인들이 그렇게 동력화되지 못한다. 이미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굳이 교회의 틀 안에서 유지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2022년 11월에 발표된 학원복음화협의회의 대학생의식조사를 살펴보면,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살펴보니, 5년 전 조사와 비교해 볼 때 집회참석, 소그룹나눔, 기도회 참석, 성경통독, 성경암송 등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 열심히 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모이기 힘들고, 공백 기간도 더 많아졌을 대학생들이 이전보다 더 신앙생활에 열심이 생겼다는 것은 특히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들의 유튜브를 통한 신앙생활까지 더 하여 본다면 스스로 하는 신앙생활의 토대가 든든함을 알 수 있다.
올해 발표된 한목협 조사를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개인별로 성경읽는 시간이 늘어났고, QT 시간은 현저히 늘었다. 더 재밌는 것은 젊은이들과 서리 집사 등과 같은 어쩌면 그간 교회에서 신앙 취약계층에서 개인 신앙생활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또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신앙동아리가 든든해졌다는 점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평신도 단체들과 활동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 IVF 졸업생 모임 등이 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평신도 대학 과정의 개설은 뜻 깊었다. 미국 풀러대학교의 김세윤 박사를 모시고 하는 성경공부는 90여 명이 신청하여 꾸준히 60-70명 가량이 참여했다. 내용은 일반 신학교 이상의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많이 모였다. 최근에는 이런 모임들이 발전하면서 ‘평신도신앙실천운동’이라는 운동 단체를 만들었다.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와같이 지역교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리고 모임을 넘어 성경공부 이상의 신학적 배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여러 신학교에서, 특히 교단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신학대학교에서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과정을 개설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쉽게 모이지 않아서 흐지부지되어 버린 경우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과정을 경험하고, 본인이 시무하고 있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도 이러한 네트워크의 연결 상에서 ‘평신도 과정’을 개설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걸 보면 확실히 요즘 평신도들의 욕구가 분명히 코로나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가 위축되는 동안,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의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유튜브 등에서 찾아갔다. 즉 성도들이 교회를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교회의 통제가 느슨한 틈을 타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교회가 만들어 주는 신앙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신앙이다. 교회의 대중들 가운데 항상 기초에 머물러 있던 신앙교육과 공동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제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만들어 가고, 더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에 나타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동적 교인이 능동적 교인이 되고, 객체적 신앙인, 또는 목회의 대상이었던 신앙인이 주체적 신앙인이 되어 자신의 신앙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목회에 한 측면으로 위기일 수 있다.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에 열심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측면에서 보면 외부의 어떤 환란 가운데서도 스스로 신앙을 세워갈 수 있는 튼튼한 신앙인이 훈련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3. 새로운 세계  New World

3년 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세계는 전혀 다른 환경을 경험했다. 특히 온라인 상황, 또는 디지털 세계에 진입은 새로운 환경이었다.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비대면의 수단으로 온라인이 급격하게 등장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에서나 나오곤 하던 영상회의의 장면이 우리의 현실로, 더 나아가서는 일상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현장에서는 정말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온라인 수업이 갑자기 깊숙하게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의 위급성이 어느 정도 약화되면서 초중고 등은 등교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경험했던 온라인 수업의 여파는 남아 있다. 그런데 대학, 특히 대학원 중심의 교육은 온라인 수업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교육부에서도 이제 온라인 학위과정을 허가했고, 일반 대학원에서 온라인 중심의 교육도 허용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실천신학대학원에서는 온라인 중심의 수업으로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고, 심지어 외국에 있는 학생들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업의 질은 오히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높다. 특히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는 대면수업 때보다 훨씬 높다. 이제는 학생과 선생이 모두 적응이 되어서 수업이 더 자연스럽고, 교수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사용하여 수업을 하므로 입체적인 강의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수업으로 인해서 오고가는 시간을 줄여서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환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월요일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학교로 모여야 하고, 학교로서는 냉난방을 유지하는 것도 큰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을 유지하고, 식사를 제공하고 하는 것들이 줄어들어서 학교의 입장에서도 큰 세이브가 된다. 이렇게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면서 교육은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 다양한 과정을 개설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면서 좋아진 점이 많다. 그런데 이런 점들을 생각해서 코로나가 아닌 상황에서 학교가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다. 일단 교육부에서 허가를 안 해 줄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교육부는 교사(校舍)를 떠난 강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로서도 새로운 과정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 따르는 모험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닥치고 강제적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고, 그러한 경험이 축적되니까 학교의 형태도 전환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결국 학교의 미래를 적어도 10년은 앞당겼다. 학교는 이렇게 닥친 10년 후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더 좋은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실천신대 만의 것은 아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가 이렇게 온라인으로 나아가고, 모든 예배가 이렇게 중계되었다. 처음에는 강제적인 상황이 많이 불편했다. 이 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보니 장점들이 보인다.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많은 행사를 할 수 있다. 교계 행사도 큰 장소를 빌리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을 동원하고 하는 과정들을 줄일 수 있다. 사람 동원이 줄어드니까 행사를 하는데 있어서 부하가 훨씬 적게 걸린다. 특히 유튜브는 누구나 자신의 방송을 만들 수 있다. 교회별로, 교육부서별로 방송이 나온다. 여러 기관들이 온라인으로 다양한 행사나 교육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또 개별 단체나 개인들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면 안방에서 핸드폰 하나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설교 뿐만 아니라 예배, 집회 등의 참여도 가능하다. 찬양이나 강의, 세미나 등도 수도 없이 많이 공개되어 있다. 또 개인신앙 생활을 위해서 성경통독, 묵상, 암송 등의 채널들도 많다. 굳이 시간을 내고, 돈을 내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세계의 콘텐츠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은 처음에 우리에게 도구로 다가왔다. 모일 수 없으니 중계를 통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요, 통로였다. 그런데 이제 콘텐츠가 쌓이고, 기술도 늘어나고, 우리의 경험치도 올라가면서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게 이제는 우리의 또 다른 세계라고 생각한다. 핸드폰 하나로 몇 시간이고 누릴 수 있는 세계가 있는데, 이를 우리가 부정할 수 없다. 이 속에서는 이 세계에 맞는 세계관과 윤리, 그리고 삶의 태도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속에서 통용되는 문법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주 넓은 세계를 마주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 세계관과 윤리, 삶의 태도, 그리고 문법과는 다른,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세계가 있다.
복음은 이제 새로운 세계에 맞는 형태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을 넘어서 서구로 나아간 바울의 교회와 같이, 오늘 우리의 교회도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에 맞는 교회론을 갖추어야 한다. 율법이 규정하는 교회와 신앙이 아니라 복음이 주는 자유 가운데 창조해 나가는 교회와 신앙이 필요하다.

‘엔데믹 리스크’는 이제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한 ‘비상상황’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의 현실로 맞을 것인지, 빨리 이 상황을 마쳐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가 이렇게 옮겨갈 수는 없다. 다양성 속에서 우리 교회가, 그리고 바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내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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